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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하나씨

3번째 직업 - 중동 외항사 승무원 면접기 3

부다페스트 - 트램

며칠 뒤에 예정되어 있던 자그레브 카타르 오픈데이에 참가하기 위해 서둘러 유럽으로 넘어왔는데, 도착하고 이튿날 면접이 취소됐다. 저렴한 호스텔에 6인실 여자 도미토리를 예약하고 며칠간은 부다페스트 머물고 있었는데, 일주일쯤 지나고 부다페스트에서 에미레이트 오픈데이가 열렸다. 나에게 그동안에 승무원 면접은 10초 만에 탈락한 마카오 오픈데이가 유일했기에 경험이나 쌓는 셈 치자 하고 EK 부다페스트 그리고 EK 크라크푸 오픈데이에 참석을 했다. 

EK는 따로 면접 준비를 하진 않았는데 1차 CV Drop을 통과하면 그룹 디스커션을 한다는 내용 정도는 알고 간 터였다. 부다페스트에서는 1차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크라크푸 오픈데이에선 2차 그룹 디스커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2차에서 나는 탁락! (혹시 EK면접얘기가 궁금한 사람은 없겠지)

카타르항공 - 마드리드 오픈데이

QR 면접을보러 마드리드로 날아갔다. (면접 보러 비행기 타는 게 일상이 된 즈음) 마드리드에서는 부다페스트에서 연이 닿은 동생과 숙소를 셰어 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이 열리는 호텔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어느쯤 끝을 찾아서 들어가자 면접 시작시간과 맞물려 큰 강당으로 면접자들이 함께 이동을 했다. 그 커다란 홀이 가득 차고 넘쳤다. 맨 뒤편에 서서 그래도 강당 안쪽에 자리 잡자 면접관 두 명이 강당에 있는 사람들부터 따라서 CV Drop을 시작할 테니 건너편에 있는 작은 면접실로 순서대로 들어올 것을 설명해주었다. 강당 안에 그러나 뒤편에 서있었기에 앞쪽에 줄을 설 수 있었다.(이때부터 나의 줄 운이 시작된 건가) 내 앞에 앞에 동생이 섰고 먼저 CV를 내고 나왔는데 손에 접힌 종이가 들려있었다. '받았어?' 묻자 '응 내가 첫 번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둘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내 차례를 기다렸다. 동생이 먼저 인비를 받아 나온 터라 왠지 모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내 차례가 되서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면접장으로 들어섰다. 금발에 새침한 표정으로 ㅈㅅㅌ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굿모닝 인사를 건네고 CV를 건네주었다. '응, 안녕 너 한국인이네. 여기까지 면접 보러 왔어?'라는 첫 질문을 받았다. '응, 나 면접 보려고 여기까지 왔어. 근데 나 영국에서 지냈었거든 그래서 이 뒤에 친구들도 만나려고 휴가 때 온 거야 ^^'라고 대답을 하자 '그럼 너 우리 회사 첫 면접이야?'라고 물었다. 순간 내 10초 면접이 떠오르며 말하지 말까도 1초 고민했는데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아니 나 지난달에 마카오에서 첫 면접 봤고 여기가 두 번째야' '그래? 그럼 너 그때랑 다르게 뭘 향상해서 왔니?' 응....? '아, 나 그때는 너무 긴장을 해서 잘하려고만 했던 것 같아. 오늘은 너랑 대화하고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마음먹고 왔어' 그러자 냉정한 그녀

'아니, 너 마인드 셋 말고, 내가 확인 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달라고 내가 이번에는 너를 왜 다음 스테이지에 보내줘야 해?'라고 물었다... 하... 저한테 왜 그러세요... 생각지도 못한 까칠함에 순간 당황을 했지만 웃으면서 '당장 내가 너한테 보여줄 수 있는 건 내 CV 보면 지난 이력에 대한 설명 있지. 거기 좀 더 간결하고 핵심적인 문장으로 다듬으려고 노력했어'라는 헛소리를 내뱉었다... 나 참 뭔 소린지. 그러자 면접관은 알겠고, 그럼 너한테 챌린지는 어떤 의미야?라는 다음 질문을 또 하더라 허허.... 챌린지는 지금? 현재? 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챌린지는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지. 나는 매번 챌린지를 해내면서 조금씩 나를 더 나은 버전의 나로 만들어가고 있어'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했다. 다행히도 내가 답변을 하는 중에 그녀는 인비테이션에 내 이름을 적고 있었다 ㅠㅠ

처음으로 인비테이션을 받아서 나오자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받았어?' '응 ㅠㅠ 소즁해 내 첫 인비' 

소중한 내 첫 인비

그리곤 몇시간을 모든 이들의 첫 단계가 끝나길 기다렸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온 이유로 2차 영어시험은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늦게 진행되었다. 강당을 넘치게 왔던 사람들이 강당을 2/3 채울 인원 정도로 추려졌다. 이때 처음으로 회사 소개랑 여러 가지 근무환경에 대한 PPT를 보게 되었다. (QR은 2번째 스테이지 진출자에게 회사 소개를 한다. EK는 1단계에) 아직은 면접 중이다라는 생각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며 열심히 회사 소개를 들었고, 곧이어 영어 테스트를 진행했다. 나는 한국에서 과외를 받았던 터라 2차 영어시험의 이른바 족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딱 저날 마드리드에서 새로운 영어 시험이 출제됐다.(이것도 나중에 내 러키 포인트) 시험 문제가 어렵지는 않았는데 대화 지문에 빈칸을 채워 넣는 부분에서 평소에 쓰지 않는 서비스 단어들이 사용돼서 알쏭달쏭한 부분이 있었다. 몇 번을 검토를 하고 시간 안에 제출하고 나오자 면접자들이 웅성 웅성대고 있었다. 족보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닌가 보다 ㅎㅎ 다들 시험이 바뀌었네, 난이도가 올라갔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몇몇 한국분들과 서로 답을 맞혀보니 나는 3개 정도를 틀렸지 싶었다. 헐 아슬아슬한데.. 여기서 떨어지나? 긴장을 타고 있는데 면접관들이 우리를 다시 불렀다. 

'번호를 부르는 사람은 강당 밖으로 나가서 ㅈㅅㅌㄴ를 만나서 얘기하도록 해'라고 ㅍㅇ가 말했다. 다행히 번호를 불리지 않았고 다음 스테이지로 갈 수 있었다. '축하해 너희는 다음 스테이지를 갈 수 있게 됐어. 아까 그 면접실에 번호 순서대로 들어와주면 돼' 아차차 나는 면접을 일찍 본 터라 상당히 앞번호를 받았고(5번!) 그렇게 바로 센텐스 슈팅에 들어가게 됐다. 이번엔 굿 애프터눈을 외치며 들어가자 두 명의 면접관이 암리치를 하고 자리에 앉으라고 말을 했다. 자리에 앉자 면접관 한 명은 질문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나를 살피는 눈길이 느껴졌다. 근데 문제는..... 진짜 나에게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게 이때 ㅈㅅㅌㄴ가 나한테 무슨 질문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두번을 미안한데 다시 얘기해줄래?라고 하자 두 면접관이 서로 바라보고 연차가 더 높은 면접관이 고개를 젓자 다른 면접관이 '그럼 다음 질문할게. 최근에 동료랑 갈등이 있었던 적 있어?'라고 물어봤다. 준비했던 답변이라 어렵지 않게 대답했지만 이미 마음을 정하고 쉬운 질문을 줬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쉬운 센텐스 슈팅을 마치고 나와서 동생이랑 다음 오픈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도 둘이 얘기하는 게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 그래도 같이 있어서 웃으면서 버틸 수 있었다.

'나 망했어. 보나마나 떨어졌음. 내일 더블린 오픈데이 갈래? 난 혹시 몰라서 비행기는 끊어놨는데 숙소 예약 안 함' 그러자 동생이 '언니 난 원래 더블린은 안 갈랬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가자'했다. '그럼 내가 숙소 알아볼 테니까 너 빨리 비행기표 끊어'하고 더블린 숙소를 찾는데... 나는 영국에 1년 넘게 있었지만 바로 옆에 아일랜드 물가가 그렇게 비싼지 그날 처음 알았다.. 게다가 면접이 열리는 호텔은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시내로 숙소를 잡으면 약 1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깜짝 놀라서 바로 네이버에 한인민박을 쳤다. 오늘 당장 잘 곳이 없고 내일 아침이 면접이었다. 어딘지 확인도 안 하고 처음 나오는 블로그에 있는 한인민박에 카카오톡을 보냈다. 

'혹시 여자 두명 오늘 예약될까요?'

'여자 3인실에 자리가 하나 남아있는데, 그게 마지막 자리예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고 붙잡아야겠단 생각으로 구구절절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저희가 오늘 꼭 두 명이 머물 데가 필요해서요. 괜찮으시다면 거실에서라도 잠깐 눈만 붙이고 두 명 값을 내면 안 될까요? 저희가 내일 면접이 있어서 더블린에 가야 하는데 갑자기 결정된 거라 숙소 예약을 못해서요. 도움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카타르항공 면접보세요?'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놀라서 네네 맞아요. 저희 진짜 한 번만 도와주세요 ㅠㅠ라고 하자 잠시만요.라는 답변이 왔다. 그새 동생은 비행기 예약을 마친 후였다.  둘이 손을 꼭 붙잡고 제발 제발을 주문처럼 외우며 답장을 기다렸다.

'오세요. 막내 아이 방 정리해서 오늘 머무르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면접 보실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위치입니다.'

여기서부터 나의 행운이 시작되었다. 벼랑 끝에서 어디라도 괜찮다고 찾은 한인민박이 면접장에서 가깝기까지 하다니. 그 길로 숙소에 돌아와 짐을 싸고 그날의 첫끼를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면접 전날 우리를 위해 준비해주신 술상 따뜻해

짐을 싸서 그날 밤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갔다. 기력이 하나도 없이 공항 의자에 둘이 털썩 앉아있는데 옆사람이 버거킹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언니 우리도 햄버거 먹을까?' '우리 현금 얼마 남았지?' '잠깐만 내가 가격 보고 올게~ 언니, 그냥 먹지 말자 비싸' '응, 돈 없다' 그러곤 둘이 깔깔깔 웃었다. 진짜 몸이 너무 힘든데 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더블린 행 비행기는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내 의지가 아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오후 4시에 한 끼를 챙겨 먹고 밤이 돼서야 다음날 면접을 위해 비행기를 타는 이 상황이 현실 같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두근거렸다. 느낌이 좋다. 더블린에 가기로 하길 잘한 것 같아.

다 끝나서 돌아보면 모든 순간에 최고의 운이 함께했다.

다음 글은 합격후기로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