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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하나씨

3번째 직업 - 중동 외항사 승무원 면접기 2

마카오로 떠나는 비행기는 자정이 가까운 출발이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어렴풋하게 그날 공항으로 가면서 들었던 생경한 감정들이 떠오른다. 혹시라도 사주를 본다면 필히 역마가 있다 할 거라는 주변의 말을 들을 만큼 그동안도 바지런하게 공항을 드나들곤 했는데 그날의 그것은 이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될지도 모르는 구직을 하러 비행기를 타다니, 역시 아무나 경험해봄 직할 일은 아닐 테니까.

자정에 가까운 비행기를 타게 된 건 순전 내 선택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한 달짜리 면접 일정의 경비를 아껴보자는 마음과 나름 체력에 자신이 있다는 자만이 합쳐져 면접 당일 아침에 도착하는 비행 편을 예약한 것이었다. 만약에 다시 가도 그렇게 예약을 하겠냐고 물어본다면? 아니오. 절대 아니.

 

면접 실패 후 울고싶던 내 마음처럼 주룩주룩 비내리던 마카오

 

마카오 공항에 도착하면 새벽 2-3시 경이라 택시 동행을 구했다. 오픈 카톡 방이라는 것도 외항사 승무원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좋은 동행을 만나 가는 길에 조금 긴장을 덜 수 있었다. 그렇게 마카오로 가는 비행기를 타자 생전 처음으로 승무원들의 움직임에 관심이 가더라. 밥을 언제 주려나 언제 도착하려나의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샌들이 사고 싶어서 사람들 발만 보고 다니던 여름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날씨가 좋질 못했다. 마카오로 도착이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심하게 흔들렸고 얼마간 공중을 돌다가 어렵게 착륙했다. 이때쯤 나는 터뷸런스+첫 오픈데이의 긴장감으로 몹시 지친 상태가 되는데, 문제는 비행기가 나만 내려주고 내 짐은 안 내려줬다.. 천둥 번개가 요란해서 도저히 짐을 가져올 수가 없다는 게 공항 직원의 말이었다. 얼른 가서 한잠이라도 자야 되는데, 가방 안에 면접복이랑 화장품이랑 다 들어있는데.. 이 상황 뭐야..짜증나..

1-2시간 정도 뒤에 다행히 짐을 찾아서 예약해 둔 호텔로 갈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얼른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잘 수 있는 시간이 고작 3시간 남짓이었다. 그렇게 선잠을 자고 일어나서 면접 준비를 시작했는데 나는 아직 어피가 많이 서툰 탓에 꼬박 2시간을 머리와 화장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그런데 내 맘도 모르는 비는 오늘도 추적추적. 여차여차 준비를 하고 면접이 열리는 마카오 소피텔에 도착을 하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정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면접을 위해 모여있었는데, 도대체 어디가 줄의 마지막이라서 내가 껴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나는 오전 11시쯤 면접장에 도착했는데 CV 드롭을 오후 3시에 할 수 있었다 ^^ 정말...힘들었어...진짜야...

그래도 마카오 면접장에서 좋은 기억이라면 한국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내가 말을 섞었던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밝은 에너지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입사를 하고 알게 된, 당시 마카오에 면접장에는 나의 도하 식구 중 두 명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힘들었는데 마지막에 내가 면접관들을 만나는 최종 줄?에 서있을 때 면접관들의 식사시간이라 거기서도 서서 오래 기다렸다. 나는 별로 힐을 신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이때 마지막 나의 체력이 방전됐으리... 그래도 웃긴 건 몸이 힘드니 긴장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나의 첫 면접관은 ㅌㄴ였는데 CV를 내러 면접관 앞까지 다섯 발자국을 걷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수백 번도 연습했던 Good afternoom maam~ 을 말하는 내 목소리가 마치 염소 같다고 생각하면서 내 멘탈도 같이 부서졌다. 바스스 바스스. 어찌어찌 첫 질문은 대답을 했는데 꼬리 질문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잘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물어봤어야 하는데 이미 맨 정신이 아닌 내가 지레짐작으로 대답을 하자 누가 봐도 물음표가 떠있는 표정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곤 그렇게 그녀가 나에게 안녕을 고했다..와줘서 고마워 다음 단계로 가게 되면 이메일을 줄게 잘 가. 이 모든 건 10초 만에 일어난 일. 그렇다 첫 외항사 오픈데이에 10초 광탈을 했다. 와 씨 나 3시간 자고 여기 와서 4시간 기다렸는데 10초, Just 10 seconds huh?

그래도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나오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나는 멍. (하지만 여기서 떨어져도 웃으며 나온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여기서 승무원 준비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항상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나와서 울면 되지 뭐) 같이 면접을 봤던 친구들이 같이 맛있는 거 먹고 풀자고 홍콩 여행을 제안해 주었지만 그냥 쉬고만 싶었다. 그렇게 멍한 채로 호텔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우니 공항에 가던 순간부터 10초 면접까지 모든 순간이 스쳐지나가더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지금 보면 그 호텔 방이 문제다. 창문이라고 있는 건 커튼을 걷으면 건넛방 사람과 귓속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열 수 없었고, 비가 내렸고, 형광등도 밝지가 않았다. 세상 우울함의 그 작은방에 있었다. 가관으로 나는 면접에 떨어졌는데 돌아갈 티켓이 없었다. 선택을 해야 했는데 10초 탈락에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 내가 유럽에 가면? 만약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거 같으면 내가 지금 유럽으로 가는 게 맞을까? (정말 어디로 갈지도 생각을 안 해서 어디 도시도 아니고 유럽이다. 계속 머릿속에 유럽 가? 말아? 만 반복)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부담될까 봐 먼저 연락도 못해보고 내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래 엄마한테 연락해야지. 29살에 승무원이 되겠다고 회사 때려치운 딸내미한테, 그래 해봐라고 말해주는 멋진 내 엄마를 생각하니까 힘이 났다. '첫 면접이라서 너무 긴장했나 봐~ 알잖아 나는 원래 유럽 가서 면접 볼라 했어. 연습 잘했다고 치지 뭐.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애써 눈물을 참으면서 통화를 끊고 나니 배가 고팠다. 그 와중에도 배가 고픈 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차라리 웃어버리곤 뭐라도 먹자 하며 우울의 방을 나섰다. 따뜻한 국물을 먹고 달달한 에그타르트까지 굳이 찾아가 챙겨 먹고 나니 약간 행복한 것도 같았다. 그래 유럽에 가야지. 칼을 뽑았으니 될 때까지 휘둘러보자.

호텔 방에 돌아와 가장 가까운 시일에 유럽에서 열리는 오픈데이를 찾고, 딱 한 달 뒤로 예정되어 있는 일정을 찾았다. 가장 가까운 시일은 며칠 뒤의 자그레브였고, 그로부터 한 달 뒤는 파리 오픈데이가 예정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두 개의 오픈데이를 다 못 가게 되는데, 자그레브는 취소가 되었고, 파리 오픈데이는 그전에 합격해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그동안의 여행 짬바로 적당한 항공권을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틀 뒤 홍콩에서 출발하는 핀에어. 내일은 오늘 홍콩에 가자고 해주었던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서 같이 밥 먹어야지. 역시 사람은 밥심이야.